-꿈과 비전을 가진 기업인의 모델-
미국 최초의 백화점 가운데 하나를 설립했던 존 워너메이커(John Wanamaker: 1838-1922)는 14세 때 서점의 사환으로 일을 시작해서, 1856년에는 남성 의류점의 점원으로 일했고 1857~1861년에 필라델피아 기독교청년회(YMCA)의 간사로 근무했다. 1869년에 그는 존 워너 메이커 사를 설립했고, 1875년에는 필라델피아 철도청의 화물보관창고를 구입해 상점을 개업했다. 전문 상점들을 한 지붕 아래에 모아놓은 이 새로운 종류의 상점은 곧 미국에서 가장 큰 백화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존 워너메이커는 광고를 성공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그는 광고 대행사를 이용한 최초의 기업가 중 한 사람이었다. 워너메이커는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1889 ~ 1893년 그는 대통령 벤저민 해리슨 행정부의 체신장관을 지냈다.
존 워너메이커를 이처럼 훌륭하게 키워낸 것은 그에게 남다른 꿈과 비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은 엄마의 심부름으로 실타래를 사러 친구 야곱과 상점에 가게 되었다. 어머니로부터 천 조각과 돈을 주머니에 넣었는데 옷감샘플이 어디로 숨었는지 나타나지 않자 점원은 귀찮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너희 같은 수상쩍은 녀석들 많이 보았지” 라며 점원의 비꼬는 말에 존의 얼굴은 붉어졌고 다급해진 그는 백화점에 전시되어 있는 비슷한 색의 실타래를 사서 문밖으로 나왔다. 그때 샘플 천이 만져졌고 색이 틀리자 존은 그 점원에게 돌아가서 말했다. “아저씨! 찾았어요. 색깔이 달라요, 방금 산 거니까 다른 색으로 바꿔 주세요.” “아니, 내가 왜? 나는 강요하지 않았고 너를 상점에 보낸 네 엄마의 잘못이니까 귀찮게 굴지 말고 당장 꺼져라!” 존과 친구 야곱은 바깥으로 쫓겨나다시피 내몰렸고 억울하고 분해서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가 상점 주인이라면 언제든지 기쁜 마음으로 물건을 바꿔 주고 모든 고객들을 친절하게 대할 거야” 존은 결심하였다. 존은 단순히 돈 버는 상인이 아니라, 상점에 들어오는 모든 고객들을 행복하게 하고 친절과 정직으로 대하는 미래의 거상을 꿈꾸었다. 즉 비즈니스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하기로 결심하였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꿈을 이루어 내었다.
존 워너메이커는 ‘소비자는 왕이다’라고 주장하며 ‘그랜드 디포’라는 최초의 백화점을 세워 성공하여 ‘백화점의 왕’이라 불리게 되었다. 링컨 대통령, 위대한 부흥사 무디 등과 동시대를 살았던 미국인이다. 그는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12살 이후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그는 마침내 꿈을 이루었다. 백화점이 크게 성공하였다. 그는 큰 부자가 되었고, 기적 같은 삶을 체험했다. 그런 그는 67년 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으며 많은 교회를 설립했다. 당시 최대의 베다니 주일학교를 세웠고 세계 곳곳에 수많은 YMCA건물을 지었다. 한번은 미국의 23대 대통령 해리슨이 그를 체신부 장관으로 임명하려 했다. 그러자 그는 "주일학교 교사와 주일 성수를 못한다면 장관직을 맡을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는 자기의 신념대로 장관직을 수행하는 4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워싱턴에서 필라델피아까지 오가며 주일학교를 지켰다. 그는 성공이 어디에서 오는지, 인생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한 멋진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 그 중 하나를 더 소개한다. 한번은 무디 목사가 어떤 도시에서 부흥회를 열려고 장소를 찾고 있었다. 무디 목사의 집회에는 수천 명이 모여들었기에, 적당한 장소를 구해야만 했다. 한참 생각하던 무디 목사는 자기와 아주 친밀하게 지내오고 있던 워너메이커에게 편지를 썼다. “워너메이커씨 백화점을 오픈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집회에 당신이 백화점을 열려고 지어놓은 그곳에서 부흥회를 열었으면 합니다.” 백화점을 오픈하는 날은 무디 목사의 집회와 같은 날이었다. 워너메이커는 즉시 무디 목사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제게는 주님의 일이 언제나 먼저입니다. 기꺼이 내어드리겠습니다. 사용하십시오.”
워너메이커는 하나님 우선의 신앙을 보여주었다. 그는 하나님 중심의 사람이었다. 세상에서 얻은 것들을 주님을 위해, 주님의 일을 위해 필요할 때 내어놓았다. 그는 받은 은혜, 체험해 온 기적에 취해있지 않았다. 그것을 지키느라 더 좋은 것을 잃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 받은 것의 노예가 되지 않고 그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했다. 그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 만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억했다. 감사의 열매를 맺었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더 큰 은혜와 복을 주셨던 것이다.
그는, 조지 휘트필드의 말처럼 “게으름으로 녹슬어 없어지는 인생이 되기보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다가 닳아서 없어지는 인생”이 되기를 소원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고(Think), 하나님 안에서 노력하고 실천하고(Try), 하나님 안에서 땀 흘리고 애쓰고(Toil),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Trust in God)하는 것이 내 인생의 표어였으며, 내 인생의 전부였다”고 말한다.일생 동안 성경을 사랑하고, 교회와 어린이 사역에 헌신한 평신도 기업인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신앙인의 모델이 되고도 남는다. 67년 동안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헌신했던 삶, 많은 교회를 설립하고 세계 최대의 주일학교를 이룬 사람, YMCA 사역에 65년 동안이나 변함없이 헌신하며 세계 곳곳에 수많은 YMCA 건물을 짓고 한국 서울에도 YMCA 건물을 지은 사람, 세계 최대의 백화점을 이루면서 직원들의 존경을 받고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최고의 시민이라는 이름으로 동상까지 세워진 사람인 그가 이루어 낸 삶은 그가 만든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만들고 하나님이 만든 것이다. 그는 다만 꿈과 비전을 가지고 성경 말씀대로 살았을 뿐이다.